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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으로 만나는 우리 교황님 51~55>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12-20 조회수 : 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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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으로 만나는 우리 교황님(51)>

교회는 자신의 정배인 말씀’, 말씀소리가 되기 위하여, 말씀을 선포하기 위하여 존재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순교에 이르기까지 이 말씀을 선포하기 위하여 존재합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상[세상]에서 지극히[가장] 교만한 자들의 손에 의한[당한] 순교입니다. (사실) 세례자 요한은 내 생각은 이렇소라고 하면서 자신 주장을 말할 수 있었고, (그리하여 사람들 가운데) 중요한 인물[유명인사]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나는) ‘말씀이 아니라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고 자신에 대하여 말했을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례자 요한의 (순교가 지닌) 비밀입니다. 왜 세례자 요한은 성인입니까? 그분은 지은 죄가 (전혀) 없습니까? (앞서 그분이 순교하신 이유를 살펴보았듯이) 그분은 진리를 절대로 절대로 자신의 소유로 삼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이념[주장, 생각]을 설파하지 않고, 복음을 사유화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순교에 이르기까지 소리로서의 교회가 되어 말씀(향하도록 회개와 세례를) 가르쳐주신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닮으려는 은총을 청해야 합니다. (세례자 요한처럼) 여러분도 사시길 바랍니다!(산타 마르타의 집 평일미사, 2013624)

 

<카톡으로 만나는 우리 교황님(52)>

우리는 마태오 복음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마태 1,1-17)’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이 성경 말씀을 들으면서) 조금은 지루하다는 느낌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사람이 이 사람을 낳고, 이 사람이 이 사람을 낳고, 이 사람이 이 사람을 낳고. (이른바) 그냥 (평범한) 족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의 참된 의미는 인간을 구원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길[역사]입니다! 이 족보 안에는 거룩한 이들뿐만 아니라 극악무도한 죄인들까지도 포함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착한 이들과 악한 이들 모두를 아우르시면서 당신의 길을 가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족보는 (우리에게 절대로 감추지 않고) 많은 죄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하지만 (죄인들까지도 포함된 족보를 통해서 우리에게 알리는 메시지는) 하느님께서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으시고 당신의 길을 (꿋꿋하게) 가셨다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그분께서는 (언제나) 당신의 백성과 함께 걸으십니다.(산타 마르타의 집 평일미사, 201598)

 

<카톡으로 만나는 우리 교황님(53)>

(마태오 복음 1,18-24에서 보듯이) 요셉은 (생물학적으로는) 자신이 아버지가 아니었지만, (천사를 통하여 알게 된) 하느님 아버지께서 맡기신 부성[아버지로서 사는 것, 아버지의 역할]의 사명을 받아들였습니다. 요셉은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생기게 된 것이라는 천사의 명령을 통하여 알게 된) 사명이 뜻하는 부성[아버지 역할]을 충실히 해나갔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와 아기(예수)의 의식주만을 책임지는 것뿐만 아니라, 아기(예수)의 성장을 도왔으며, 목수일을 가르쳤고, 성숙한 인간이 되도록 이끌었습니다. “(본디) 너의 자리가 아닌, 하느님의 자리인 부성[아버지됨]의 역할을 받아들여라!” (이에 대하여 덧붙인 요셉의 말은) 한마디도 없다는 것입니다. 복음에서 보듯이 요셉은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요셉 성인은) 침묵으로 응답하신 분, (자신이 받은 사명을 크게 떠버리지 않고) 조용한 삶으로써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신 분이십니다.(산타 마르타의 집 평일미사, 20171218)

 

<카톡으로 만나는 우리 교황님(54)>

여기에 우리가 볼 수 있는 빈 요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빈 요람은 아기 예수님께서 오실 희망의 상징이 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앞으로도 계속 텅 빈 상태로 박물관 전시물건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요람입니다.(요람에 비유될 수 있구나!) (지금) 나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텅 빈, 항상 비어있는 상태인지, 아니면 (참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더 나아가 다른 이에게) 생명을 내어주기 위하여 항구하게 열려있는지요? (나의 마음이 참 생명이신 주님을) 잘 모시고 충만하게 되기 위해서인지요? 아니면 이제까지 단 한차례도 신생아를 받아본 사실 없이 그저 박물관 전시용이 된 요람처럼 () 막힌 마음으로 살도록 그냥 놔 둘 것인지요?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산타 마르타의 집 평일미사, 20171219)

 

<카톡으로 만나는 우리 교황님(55)>

마리아의 [동의]’라는 응답에는 구원의 모든 역사에 대한 [동의]’가 담겨있습니다. 거기서 (, 마리아의 에서) 인간과 하느님의 마지막 가 시작됩니다. (인간이 하느님께 드린 결정적인 마지막 [동의, 순종]’이며, 동시에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역사를 완성하시는 [의지, , 계획]’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마리아처럼) ‘로써 응답하는 것을 알게 된 (여러) 선남선녀들에게 이 (응답과 순종과 믿음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은총을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산타 마르타의 집 평일미사, 20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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