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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으로 만나는 우리 교황님 16~20>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11-15 조회수 : 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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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으로 만나는 우리 교황님(16)>

예수님의 제자들은 제 각각으로 좋은 것들의 가치와 의미를 더욱 충만케 하는 ‘(인간이 헤아릴 수 조차 없는) 가장 좋은 것을 그분 안에서 발견했기 때문에 (그들이) 소유한 모든 것들을 전부 다 버렸습니다[포기했습니다]. , 가족들간의 관계, 다른 인간 관계들, 직업,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문화적인 유산들과 경제적인 재화들 등등.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신을) 끊고, ‘사랑과 봉사의 방식복음의 방식으로 모든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삼종기도, 201398)

 

<카톡으로 만나는 우리 교황님(17)>

주님께서는 단지 한 사람만 잃으면 된다는 사실조차도 용납하실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역사하심은 (어떤 사람이) 잃어버린 (자기) 자녀들을 찾아 나서서 다시 찾은 기쁨에 (자기 동네) 모든 이들에게 잔치를 여는 (부모의 마음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아흔 아홉 마리의 양들조차도 목자를 멈추게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로지 자신을) 양우리 속에다 가둬놓도록 하지 않게 하는 ‘(양들을 향하여) 멈추지 않는 (자부적인) 그분의 원의[열망]’입니다. (어쩌면) 그분께서는 당신을 다음과 같이 합리화[정당화]하실 수도 있습니다. “내게는 (아직도)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이 있고, (사실) 한 마리는 잃었습니다. 그렇다고 큰 손실은 아닙니다. 이것이 내가 이룬 결과입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에게 각각의 존재들은 매우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분께서는 도움을 더 필요로 하는 이들, 더 소외된 이들, 더 배척 받는 이들을 찾아 나서십니다.(일반알현, 201654)

 

<카톡으로 만나는 우리 교황님(18)>

죽음이란 ‘(결코) 무서운[두려운, 끔찍한] 유령(같은 것)이 아니라 (분명한) 실제라는 통찰입니다. 가령 (죽음에 대하여) 내가 생각하기에 따라서 죽음이 두렵다거나 (그렇게) 두렵지 않을 수도 있지만, (과연 우리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죽음에는 주님과의 만남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죽음의 아름다움일 것이고, 주님과의 만남일 것이고, 그분께서 (나를) 만나러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나에게) “오너라, 오너라, 내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이여, 내게 오너라.”(산타 마르타의 집 평일미사, 20171117)

<카톡으로 만나는 우리 교황님(19)>

무엇보다도 우리의 기도가 소용없다고 느껴질 때, 모든 이들이 의욕상실과 절망의 시간들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재판관과는 (본질적으로, 근본적으로, 참으로) 다르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때와 방식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지만, 당신 자녀들의 (기도를) 지체 없이[미적거림 없이] 들어주신다고 확인시켜 주십니다. 기도는 요술방망이가 아닙니다! 기도는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을 (굳건히) 간직하고, (우리가) 그분의 뜻을 () 이해하지 못할 때에도 (우리가) 그분께 의탁하도록 도와줍니다.(일반알현, 2016525)

 

<카톡으로 만나는 우리 교황님(20)>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인생은 영원을 향한 여정이라고 되새겨 주십니다. 사실 땅 위에는 우리를 위한 영원한 도성이 없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올 도성을 찾고 있습니다.(히브 13,14)”라는 말씀을 절대로 잊지 말고, 우리가 지닌 모든 탤런트들[재능들]을 열매맺게할 소명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러한 전망 안에서 (우리가 맞이하는) 모든 순간들이 소중해지기 때문에, 천상[하늘나라]을 향한 그리움[향수]을 품은 채 지상에서 살고 활동합니다. (우리는) [세상] 위에 두 다리로 서서 걸으며, 땅 위에서 일하고 선을 행하고 천상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삼종기도, 2019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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