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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으로 만나는 우리 교황님 11~15>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11-03 조회수 : 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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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으로 만나는 우리 교황님(11)>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서, ‘믿음과 희망과 사랑[향주덕]’이 최고의 감정이며 마음가짐이다. 이 세가지 덕은 성령의 은총으로써 우리 안에 불어넣어 주시는 것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1812~1813항 참조) (다시 말해 향주덕은) 우리를 낫게 하는 은사들이고, 우리의 치유자를 알아보게 하는 은사들이며, 우리에게 새로운 지평[안목]을 열어주는 은사들일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험한 풍랑도 헤쳐나가도록 하는 은사들입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복음을 통하여 이루어진 새로운 만남은 우리에게 창의적이고 새로워진 정신을 갖추도록 이끌어줍니다. (그러면) 우리는 (공동의 집인) 지구와 (형제인) 인간 가정을 위협하면서, 서로를 갈라치기 하는 정의롭지 못한 구조들과 파괴적인 실제들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습니다. 이제 반문해 봅시다! 어떤 방식으로 우리는 지금 이 세상이 치유되도록 도울 수 있을까요? ‘영혼과 육신의 의사이신 주 예수님의 사도들처럼 우리도 치유와 구원의 (주님의) 사업을 계속 이어가는 소명을 충실히 살아야 합니다.(일반알현, 202085)

 

<카톡으로 만나는 우리 교황님(12)>

예수님께서는 사회적인 행동의 규정을 정해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겸손의 가치에 대한 가르침을 주시려고 하십니다. (우리 인간의) 역사는 교만, 출세지향주의, 허례허식, 자기과시가 수많은 악의 이유라고 가르쳐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끝자리를 선택하는 필요성을 깨우쳐주십니다. ‘(자신을) 낮추려 하고 드러내지 않으려는 삶을 추구함이 겸손입니다. 하느님 앞에 우리가 이러한 겸손한 (삶의) 모습을 살게 되면, (의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높여주시려고 (더욱 더) 우리에게 마음을 쓰시면서 우리를 들어 높여주십니다.(삼종기도, 2016826)

 

<카톡으로 만나는 우리 교황님(13)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행복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뜻을 보여주십니다. 이 메시지는 이미 (예전부터) 예언자들의 설교 안에 내포돼 있었던 것입니다. , 하느님께서는 가난하고 박해 받는 이들 가까이에 계시며, 그들을 핍박하는 이들로부터 (당신의 강한 손으로 끌어내어) 자유롭게 하십니다. 그러나 (예언자들과는 달리) 행복선언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떤 면에서는) 색다른 길을 제시합니다. (예를 들어) ‘복음적 의미에서 가난한 이들은 하늘나라를 추구하기 때문에 깨어있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소유하기 보다는 서로가 함께 나누는 삶을 우선시하는 공동체의 형제애 안에서 싹트는 하느님 나라를 미리 보게 됩니다.(삼종기도, 2017129)

 

<카톡으로 만나는 우리 교황님(14)>

가끔씩 (우리의 머리 속에) ‘거룩한 미사에 반하는 불경스런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도대체) 미사가 (내게) 뭘 해주나? (밥을 주나? 옷을 주나? 등등) 내가 (미사참례) 하고 싶을 때, (그냥) 성당에 가서 (조용히) 혼자서 기도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하지만 성체성사는 개인적인 기도라거나 멋진 영적 체험도 아니고, 최후의 만찬 때에 예수님께서 행하신 바를 단순히 기억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미사에 대한) 이해를 잘 하기 위해 성체성사는 기억이라고 얘기합니다만, 오히려 (미사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사건을 지금 (이 자리에서) 살도록 행하는 (우리의) 몸짓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체는 우리를 위하여 실제로 내어주신 그분의 몸입니다. 성혈은 우리를 위하여 실제로 흘리신 그분의 피입니다.(삼종기도, 2015816)

 

<카톡으로 만나는 우리 교황님(15)>

설령 부르심을 받은 이들의 열심함이 부족할 지라도 하느님의 계획은 어그러지지 않습니다. 맨 처음에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양해를 구해도 그분께서는 낙담하지 않으시고, 잔치를 뒤로 미루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모든 조건과 이유를 따지지 않고 당신의 확장된 초대를 다시 제안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종들[천사들]을 고을의 한길과 골목 쪽으로 보내시어 보이는 이들 모두를 불러오게 하십니다. 가난한 이들, 버림받은 이들, 보잘것없는 이들, 착한 이들과 (게다가) 악한 이들까지도 (어떠한) 구별도 없이 모든 사람들이 (그분의 초대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그분의 집은 배척됐던 이들로 채워집니다. 어떤 이로부터 거부된 복음이 기대[생각]하지도 않았던수 많은 이들의 마음 안에서 복음이 환대 받았습니다.(삼종기도, 2014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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